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영양상태
1인당 식료품비(실질액)는 총 32% 증가했다. 그중 곡물류 소비액은 절대적으로 감소한 반면, 그 밖의 식료비가 늘었다.
이 1인당 곡물 소비의 감소를 부정하는 연구는 없다. 최근 필자의 추계에서도, 단순 합계한 곡물소비량은 20% 가까이 감소했다.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헌병, 경찰제도를 채택하여 집합, 결사, 언론, 출판 등의 활동을 금지하고 독립운동 진압에 온갖 힘을 기울이는 한편 학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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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일제시대(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경제발전
시대별로 토지조사사업(1910년대)과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임야소유권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는 권영욱(1965)을 필두로 신용하(1982), 강영심(1983·1984), 심희기 1991a; 배재수 외(2001)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밖에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검토할만한 논저 또한 적지 않다
, 임야조사사업으로 빈농화를 더욱 가속화시켰고, 금융, 화폐정비, 회사령과 광업령에 의한 민족자본과 상품판매 시장과 지하자원 등의 광범위한 동화정책을 내세우고 이를 기만하기 위하여 교육, 여론, 종교단체를 통제, 회유함으로서 역사와 민족화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을 시도하였다.
학교의 시간표나 기차 운행 시간, 물건의 양과 길이를 재는 척도 등은 모두 동경의 것과 일치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농업에서의 변화도 드러난다. 일제강점기에 농민들에게 가장 크게 요구 되었던 것은 모든 농업 생산품들의 상품화와 규격화,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대량생산이 가능토록 하는 것
식민지 지배체제라는 좀 더 구조적 차원에서 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백낙청은 일본에 의한 한반도의 식민화가 피상적으로는 덜 서양적이고 때로는 반서양적인 특징들을 낳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대체로 서구적인 가치들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즉 일제의 반서양적 언사가 종종 한
Ⅰ. 일제강점기(식민지시대, 일제하)의 사회주의운동
국내의 상황이 악화되자 국제적인 공산주의 기관인 코민테른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비판과 지시를 겸해 1928년 12월에 ‘조선의 농민 및 노동자의 임무에 관한 테제’(12월 테제)를 발표하였다. 이의 내용은 우선 그제까지 인텔리겐챠에 중
교육함이외다.”라고 하는 입장에서 결혼을 “인류의 최중대한 이상”이라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또한 산업문제, 교육문제, 사회제도 개량문제, 농촌계발문제, 도덕문제, 남녀문제, 이 모든 문제 중, “혼인문제는 현상에 가장 긴중한 문제의 하나”라는 혼인문제 인식과 함께 우생학 또는 인종개
일제시대 전 기간을 거쳐서, 식료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60%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식료공업이라는 것은 정미소라든가, 두부공장, 간장공장등 식료품 가공공업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들이 공산액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전체 공산액의 절반을 넘어 3분의 2수준이 되기